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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편집

2015년 4월 17일, 리그베다위키와 운영자들의 여러 폐단이 드러난 사건. 이 사건으로 리그베다위키는 극도로 위축되었고. 리그베다를 대신할 대안위키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전개 편집

3월 8일 : 모든 것의 시작 편집

한 리그베다 위키 위키러가 영어 위키백과의 네버랜드 문서를번역해 리그베다 위키에 항목으로 만들겠다고 질문하였고 당시 관리자였던 청동은 이를 허가하고, 그 위키러는 문서를 번역해 항목화했다. 이 일은 2015년 3월 15일 한국어 위키백과의 사랑방에 알려진다.. 3월 17일, 위키백과 유저들은 리그베다 위키에 리그베다 위키의 저작권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제기된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 리그베다 위키는 CCL NC(비영리)를 사용하면서 광고를 붙여 NC를 위반하고 있다
  • 리그베다 위키에 작성된 문서는 리그베다에 기부되고 있다.
  • 표절 혹은 무단 번역하는 불펌 행위를 방조하며 저작권을 무시하고 있다. 1번의 경우 CCL NC 조항이 배너광고를 금지하지는 않는 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으나, 2번의 경우 리그베다가 기여자에게 충분한 대가를 주지 않고 기부를 받는다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며, 위키백과와 저작권이 호환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불펌을 방조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인 것이다.

불펌 문제는 우선 이 일의 발단이 된 일명 '네버랜드 사태'를 먼저 살펴 볼 필요가 있는데, 이는 다른 불펌 사안과 달리 사랑방을 통해 한국어 위키백과에 직접 언급되었던 문제다. 이 문제를 끌어올린 것이 다중 계정을 이용한 악성 사용자였다고는 하나, 불펌 문제에 대해서는 꾸준히 상호 논의가 필요한 문제이긴 하다. 특정 문서의 권리를 주장하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사용자도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불펌임을 증명할 수 있다면 운영진에게 이의 제기시 바로 삭제되는 등 불펌에 대한 대응 역시 꾸준히 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위키 게시판이나 공식 이메일을 통하지 않은 경우에 대해서도 모두 처리하고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 남아있다. 보통 이러한 경우엔 네버랜드 건과 마찬가지로 제 3자에 의해 언급되어 원 저작자에게 알려지는 식으로 진행되나, 당연히 모든 사례가 모두 리그베다 위키에 전달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제기된 문제가 있었지만, 억지 법리해석을 해서 일방적으로 잘못이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당시 리그베다 위키의 관리자였던 청동은 오프라인 모임을 제안했다. 4월 4일 성남 분당구 한 카페에서 오프라인 모임이 열렸다. 청동 대신 외부 담당자인 사채꾼이 나왔으며, 네버랜드 항목을 번역한 당사자와 한국어 위키백과 운영진 중 한 명, 리그베다 위키 유저 몇 명이 참여했다.

2번 문제는 소송과 관련된 주장을 유지하기 위해 형식상 삽입된 문구일 뿐이며, 실질적으로 기부 행위를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에 효력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 기부 조항에 대한 논란이 당시 위키백과와의 저작권 논란과 함께 일어나긴 했지만 이후에 벌어질 "악덕 청동에게 저작권이 넘어가고 책임은 우리가 진다" 라는 주장은 선동에 가까웠던 셈. 

 4월 8일 편집

리그베다 위키의 외부 운영자 사채꾼이 오프라인 모임의 결과를 발표했다. "속살 글"이라 이름 붙인 발표문에서, 리그베다 위키는 로펌비, 회선비, 서버비 등등으로 심각한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그 원인은 페이지뷰를 뺏어가는 엔하위키 미러에 있지만 미러와는 3년 전부터 연락이 되지 않고, 미러의 관리자인 퍼즐릿 정과 법정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과 문서의 저작권은 리그베다 위키에 있다는 내용, 최근에 사업자 등록을 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사람들은 과격한 어휘와 마치 위키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태도, 석연치 않은 해명에 거센 불만을 드러냈다. 불만은 다음과 같았다.

  • 2013년에 리그베다 위키와 엔하위키 미러는 화해하지 않았는가?
  • 문서의 저작권은 기여자에게 있는게 아니었는가?
  • 미러가 뭘 잘못했다고 미러에게 고소를 때리는가?
  • 검색엔진 노출을 막아놓고 페이지뷰 안나온다고 하는건 뭔가?
    이후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해명에 나섰지만, 적절하지 못한 대처와 리그베다 위키 공식 트위터에서 행동이 문제가 되어 논란이 커졌다. 결국, 4월 8일 청동이 사퇴 권유 방식으로 사채꾼이 리그베다 위키의 대외 업무 담당 자리에서 사퇴하였다.

2016년이 되어 이 사건이 인터넷 역사 처럼 이제는 과거의 일이 된 만큼 당시 제기된 불만에 대하여 여러가지 사실들을 작성하면 다음과 같다. 

  • 엔하위키 미러는 일단은 화해의 제스쳐를 취했지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약속 불이행 등으로 인하여 리그베다위키와 갈등을 조장했고 약속 중 하나인 사이트 운영권 양도에 대해 거절 의사를 밝힌 다음 소송을 진행하였으므로 화해를 취하는 것이 법적으로 무효화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아래 참고) 

나) 채권자로부터 채권자 사이트의 운영에 관하여 명시적으로 동의를 받았다는 주장
채무자는 2013. 4. 23.경 채권자로부터 채권자 사이트를 미러링한 채권자 사이트 운영에 관하여 명시적인 동의를 받았고, 적어도 이 사건 가처분 신청 이전까지는 채권자가 그와 같은 동의를 철회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한다.
살피건데, 채무자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2013. 4. 23. 이전에는 채권자가 채무자에 의한 채권자 사이트의 미러링 행위에 명시적으로 동의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보이고(채무자는 막연히 '채권자와 협력관계 혹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라고만 주장한다), 채권자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인 동의의 존재를 소명할 자료도 없다.
그리고 채권자와 채무자가 협력관계라는 취지의 공동 공지 및 채권자와 채무자 간의 이메일(소을 제2, 3호증)의 각 기재는 채무자의 주장에 부합하는 듯 보이나, 기록 및 심문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2013년경부터 채무자가 다음(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자료(채무자가 미러링하여 채권자 사이트에 게시한 채권자 사이트의 게시물들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를 판매한다는 등의 소문이 인터넷상에 유포되었고, 채권자가 이를 사실로 믿고 채무자에게 항의하여 분쟁이 초래되었으며, 채권자가 위와 같은 소문이 사실이 아님을 알고 채무자에게 자신의 행위를 사과하며 분쟁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채무자가 공동 명의의 공지를 게시할 것을 제안하고 채권자가 이를 수락함에 따라 형식적으로 소을 제2호증과 같은 공동 공지가 작성되었다고 볼 여지가 있어, 이것만으로는 채권자가 채무자의 미러링 행위를 아무런 조건 없이 동의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기록에 의하면 채권자는 2013. 4. 22.경 채무자가 올해 말이나 내년 중으로 기술 이전을 하고 미러(채무자 사이트)에서 손 떼고 싶다4고 하며 향후 1년 안에 채권자 사이트의 운영권을 채권자에게 양도하여 줄 것처럼 제안하여 이를 믿고 채무자의 미러링 행위에 한시적으로 동의하였고, 채무자는 그와 달리 2014. 6.경 채권자에게 채권자 사이트의 운영권을 양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시한 것으로 보인다(소갑 제13호증).
그렇다면 채권자가 채무자의 미러링 행위에 동의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동의는 채무자의 채권자 사이트 운영권 양도가 이행되지 않을 경우 이를 철회할 수 있는 권리를 유보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고, 채권자는 채무자가 채권자 사이트의 운영권을 양도할 의사가 없음을 명시하자 이 사건 가처분 신청서 송달로써 동의를 철회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
채무자의 위 주장도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 서울지방법원 2015카합702

  • 약관상 문서의 저작권은 리그베다위키에 있다고 볼 수 있을 여지가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를 이용한 권한 행사는 없었으며. 이와 같은 약관이 유지된 이유로는 소송 전략 때문에 유지했다고 한다. # 
  •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이다. #
  • 검색엔진 노출을 허용하더라도 구글 검색엔진 상으로는 이전 검색결과에 의해 엔하위키 미러를 우선순위로 두는 상황이었다. 

2.3. 4월 15일 편집

청동이 로펌으로부터 받은 자문서를 공개하였다. 하지만 해당 자문서의 공증상태가 부실하고, 작성자도 user[5]로 쓰여있는 등 형식상 문제가 많아 해당 문서가 로펌에 의해 쓰여지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많은 사람들이 반발하였고, 각종 비난을 시작하였다. 일부는 법무법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까지 했다. 이에 청동은 해당 자문서가 요약본이라고 주장하며 전문을 다음날 4~5시에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다음날에도 전문이 올라오지 않았다.

현 시점에서 리그베다위키 운영자인 함장의 답변에 따르면4월 15일자 자문서는 법무법인에게 받은 자문서라고 한다.

4월 17일 : 반달시대 편집

한줄 요약 : 무정부 시대 4월 17일 4시 리그베다 위키의 위키러들이 문서 꼭대기에 리그베다 위키가 사유화 및 영리화 되었다는 내용의 틀을 달기 시작했다. 이후 관리자가 계속 잠적하자 이용자들이 악성 이용자로 돌변해 리그베다 위키의 항목들과 위키게시판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본래는 관리자 권한으로 막아놓을 필요가 있던FrontPage가 비로그인 사용자에게도 편집이 열려있던 탓에 반달을 피할 수 없었다.

이용자들이 특정 사이트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일이 있는데, 사실 여러 커뮤니티에서 엔하위키에 대한 나쁜 인식은 없지 않아 있었다. 외부인이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소위 암묵적 룰 문제, 특정 문서를 작성금지 등의 임시조치를 취하는데 있어 충분한 설명이 이뤄지지 않아 사이트의 정치 성향을 오해받는 등의소통 방식 문제, 엔젤하이로 시절부터 비롯된 친목질 논란 문제, 위키에 다른 이의 저작물을 무단전제 하는 돚거위키 문제, 위키 내용만을 맹신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이를 강요해 눈총을 받는 소위 위키초딩 문제, 특정 사용자의 과격한 태도와 이를 방조하던 관리자에 대한 편파판정 문제 등으로 악평을 조금씩 쌓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출신'을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나마 방관하던 이용자들에 심지어 몇몇 존재감이 적었던 고정닉까지 반달에 가세하는 일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청동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리그베다 위키 자체가 해킹당해 아예 닫혀버리고 "청동씨 이건 아니죠. 돌아와서 얘기를 하세요."라는 글만 남았다. 인코딩이 깨진 탓인지 알 수 없는 문자로 뜨고, 수동으로 인코딩을 변경해야 내용 확인이 가능했다. 문서 훼손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아 골든 타임을 놓쳤고, 가장 비중이 큰 이용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엔하위키 미러 열람자들에게 고스란히 본관의 혼란을 노출시키고 말았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그러한 것을 무마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도 해킹으로 인해 날아가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리그베다 위키의 인지도는 이 시점부터 바닥을 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월 18일 편집

리그베다 위키가 4월 15일 시점으로 롤백되었다. 당연하게도 항목의 편집·삭제는 허용되지 않았지만 성난 군중은 위키게시판(현 위키워크샵)과 잡담게시판에 눌러앉아 고정닉들을 비판하였다. 이에 고정닉들은 난장판이 된 리그베다에 남거나 NTX로 대피하는 등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이후 잡담게시판에서 R-18 콘텐츠가 올라오자 회원 전용이 되었다. 

4월 20일 편집

청동이 새로운 공지를 올렸다. 공감버전업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을 알리는 공지로써 다음과 같은 것을 진행한다고 발표되었다.

  • 새로운 게시판은 이메일 인증 즉시 로그인이 됨
  • 토론 익명화
  • 토론은 기본적으로 일대일로 진행
  • 흐르는 공지를 사용하지 않음
  • Frontpage에 공지게시판을 노출
  • 삼진제도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징계기간 조정
  • 이용방침을 수정하는 경우 아무리 사소한 수정이라도 공지하고 토론
  • 기술 지원과 위키 운영 등 부운영자 선출
  • 위키 하단에 운영진 일람 링크를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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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2일 : 반달러들 전성시대 편집

위키만을 남기고 모든 게시판이 닫혔다. 4월 23일, 위키 문서 편집이 가능해졌다. 반달과 기여철회의 쓰나미가 몰아닥쳤다. 많은 기여철회자들이 자동 차단 스크립트에 의해 차단되었다.[8] 이에 대해 청동은 스크립트 문제라고 해명하고 이로인해 차단된 사람들을 해제하였으나 스크립트를 고치지는 않았다. 리그베다 위키가 소속되어있던 사이트인 NTX의 운영자인 함장이 저작권 기부 방식은 청동이 아니라 자신이 결정한 것이라는 해명문을 올렸지만 이미 때는 늦어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반달이 이어지는 와중에 정식 자문서가 올라오게 되었다. 

4월 25일 편집

리그베다 위키의 서버가 닫혔다.

5월 14일 편집

리그베다 위키가 엔하위키 미러를 상대로 제기한 '인터넷 사이트 명칭 사용금지 등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방법원이 받아들였다. 판결문은 검색하면 나온다. 이와 동시에 리그베다 위키가 NTX로부터 엔하위키라는 명칭을 10만원에 양도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를 이전까지 유저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5월 17일 편집

리그베다 위키가 다시 열렸다. 데이터는 다시 4월 15일 이전으로 롤백된 상태.

5월 28일 편집

리그베다 위키 게시판이 다시 열렸다.

6월 7일 편집

리그베다위키 운영자(청동으로 추정됨)의 해명문이 올라왔다.# 사업자등록을 한 이유에 대하여 위키 운영을 원할하게 하고 사이트에서 발생하는 자금 문제 및 각종 법적 문제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라고 밝혔다.  이때부터 정식으로 이용허락 철회를 수락하기 시작했다. (다만,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쳐야 한다.) 

6월 15일 편집

리그베다 위키의 약관에서 저작권을 기부한다는 식으로 해석가능하던 부분을 완전히 삭제하고 기여자가 자신의 기여에 대하여 저작권을 가진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리그베다 위키의 구 약관에는 저작권을 기부한다는 부분이 없었지만, 이 약관이 회원가입 과정에서만 보여지는 약관이었다는 점이 문제다. 이렇게 되면 비로그인 사용자 대상으로는 작성창에 링크가 있던 리그베다 위키 기본방침만이 유효한 것이 된다. 실제 엔하위키 미러 관련 가처분 신청 결정문에서는 리그베다 위키 기본방침을 약관으로 보았다.

6월 27일 편집

신청자만이 편집 가능한 베타테스트가 시작되었다. 함장이 다시 리그베다 위키의 관리자가 되었다. 6월 28일, 위키 갤러리거주자들이 대체위키에 대해 질문했다가 분란 조성으로 영구차단당했다. 적합한 처벌인지 의문이 제기되었지만 해당 계정들은 아직까지 영구차단 상태다.

7월 3일 편집

로그인 상태만이 편집 가능한 오픈테스트가 시작되었다.

8월 2일 편집

리그베다위키에서 이 항목이 작성됐다.

8월 초~중기 편집

비 로그인 수정이 풀렸다. 하지만 몇몇 제한은 있다.

결과 편집

운영자에게는 우리가 단순한 잉여일 수도 있다.돈 버는 기계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굼벵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이제 공공재의 사유화를 주장하는 자에 맞서 우리의 권리를 쟁취하자. 싸우자! 싸워서 이기자! 우리가 누구인가? 위키러다. 우리의 자부심과 힘을 독재자에게 보여주자!
4월 경, 롤백되기 전 리그베다 위키에 있었던 리그베다 위키 영리화 사태 문서의 마지막 구절.


리그베다 위키는 큰 타격을 입었다. 베타테스트를 시작하면서, 위키가 일부 유저들이 편집할 수 있게 되었는데도 편집량은 사태가 있기 전의 1/10도 안 되는 수준이다. 281,000고지를 달성한 6월 4일 이후 282,000고지는 3개월 가까이 지나서야 깨졌다. 많은 수의 유저들이 돌아오지 않았으며, 돌아온 유저 중에서도 항목 편집에 흥미를 잃은 사람이 많다. 청동은 청사장이라는 별명을 얻고, 리그베다 위키 게시판 고정닉들은 청위병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리그베다 위키의 이미지는 완전히 폭락했다. 위키계에서 리그베다 위키에 대한 취급은 나치와 비슷할 정도다. 친목질 등으로 이미지가 급속히 추락하는 가운데 자신이 기여한것이 리그베다 위키의 사익에 쓰인다는 것이라고 생각한 분노한 위키러들이 일어남과 동시에 반달러들도 이때다 하고 끼어 들고 대체 위키들이 등장하여 실망한 위키러들을 쓸어담을뿐만 아니라 리그베다 위키가 DDOS에 대해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등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서 일어난 결과다.


리그베다 위키가 해킹당하며 모니위키 또한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모니위키 개발자인 박원규는 이 문제점을 수정했지만 깔거리만 기억하는 사람 특성상 그게 잘 알려질지는 의문. 리브레 위키가 아직 문을 열지 않았을 때, 모니위키를 사용하는 것도 고려해 보긴 했지만 미디어위키를 사용하게 된 이유가 리그베다 해킹으로 인해서 '보안상 문제가 있다' 라는 이유로 모니위키를 쓰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아직 모니위키가 문제점을 해결하기 전의 일이지만.


리그베다 위키에 회의감을 느낀 사람들 중 일부가 대안 위키를 만들자는 의견을 제기했고, 실행되었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갈렸다. 리그베다 위키의 DB를 이용하고 싶었던 사람들은 리그베다 위키 DB를 포크한 나무위키, 오리위키를 만들었다. 문제점이 많은 리그베다 위키 DB를 포기하고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리브레 위키를 만들었다. 세간에서는 리그베다위키에서 갈라져 나왔고, 성격[9]이 비슷한 위키들을 "엔하계 위키"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디시인사이드에서는 디시 위키 프로젝트 갤러리[10]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위키러 요구에 따라 만든 것으로 알려졌지만, 나중에 디시위키를 만든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디시인사이드가 위키위키에 진출하려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게 위키라 마구 생겨나는 상황을 대위키시대라고 한다.


한동안 대한민국 규모 3위의 위키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2015년 8월 9일부로 비로그인 유저에 대한 편집 제한 조치가 풀리기는 했으나 사유화 사태 발생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접속자 수가 거의 없는지 2015년 9월 10일 오전 5시 8분 기준으로 마지막에 편집된 글이 2015년 9월 10일 오전 1시 44분이다. 과거 24시간 내내 5분 안에 하나 이상씩 꾸준히 편집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새벽시간대에는 3시간 이상 편집을 안하는 경우가 많다.

4. 사건의 명칭 편집

'2015년 리그베다 위키 사태'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곳은 오직리그베다 위키 뿐이다. 


주로 나무위키로 대표되는 사태 직후 만들어진 대안 위키들(리브레 위키, 오리위키를 포함한 곳) 에서는 초기에 '리그베다 위키 영리화 사태'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지만, 문서가 정리되면서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 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사건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았던 디시위키에서도 이러한 명칭을 쓰고 있지만, 디시위키와 노선이 비슷하지만 이미 존재했었던 구스위키는 아예 다른 명칭인 '2015년 리그베다 위키 대폭발 사건'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신흥 위키인 유니위키와 오사위키도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명칭의 차이는 리그베다 측의 주장이나 해명을 인정하지 않는데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혼란의 여파로 인해 리그베다 위키의 정책에 반대하여 새로 생겨났거나 재조명된 곳, 아예 처음부터 노선이 다르거나 리그베다 위키를 경계하던 곳이 있는 만큼 이러한 괴리는 당연하다 볼 수 있다.